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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제작 일기

[DMZ 다큐멘터리 제작중] #9 뭘 더 해야해

by 정어리란다 2018. 11. 14.


이래저래 많이 지치는 날이다. 이곳 저곳에서 내 경계를 침범하는 기운들이 많았다. 나는 나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받지 않고 돌려주었다. 그래도 이미 들은 건 계속 맴돌더라. 덕분에 내 입이 고생을 해야했다.

3주간 내리 주말 없이 뭔갈 계속 했던 것 같다. 아니, 그랬다. 매일 일기를 쓰는 건 꽤나 힘든 일이고 더군다나 진전도 없는 다큐에 대한 일기라면 거의 일기 쓰려고 한국 전쟁 공부하는 거나 다름 없다.

하다보면 그렇다, 많은 사람이 죽임 당하고, 죽이고, 희생 당하고, 가족을 잃는 끔찍한 내용들만 보다 보면 더 이상 보고 싶지가 않아진다. 그냥 보기가 힘들어 진다. 일부러 따뜻하고, 일상적이며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드라마를 챙겨본다. 그러면 조금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보다보면 무뎌지고 덤덤해지는 것 또한 힘든 일이다. 저 위에 단계를 거치고 나니 온갖 잔인한 학살에 대한 글에도 그냥 이거 읽어서 이 내용을 일기에 쓰면 되겠다- 싶다. 내가 감히, 라는 생각도 든다. 대체 나는 이 다큐로 뭘 말하고 싶은거지? 모르겠다. 하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생각 날 수도, 다 끝날 때까지 모를 수도 있겠다.

이 블로그 라는 공간은 너무나도 공개적이어서 마치 옷을 다 벗고 출근길 지옥철에 타는 것과 같은 느낌의 상상이 든다. 이거라도 안 했으면 다큐는 진즉에 포기했겠지. 공부도 그렇고.

그냥 그렇다고. 애써 희망적이고 싶지 않다. 이 공간은 매우 불편하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무슨 말을 더 해야될지 모르겠다. 그냥 쓰지 않았으면 좋을 글이었는데 여기까지 썼으니 다시 지우기도 뭣하고 뭘 더 써야하지... 1000자는 꼭 채워야 한다. 그게 룰이다. 아 너무 힘들다. 오늘 그냥 이리저리 다 터진 것 같다. 다른 한 편에선 온갖 혐오가 가득한 뉴스들 뿐이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냐는 듯 가공된 예쁨들의 전시가 한창이다. 이 괴리에 구역질이 난다. 뭘 더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모든 사람의 역사같은 걸 다 담아낼 그릇이 안 된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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