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S American Experience <The battle of Chosin>
사진 출처:https://www.imdb.com/title/tt6186096/
어제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대한 영상을 본 데 이어, 넷플릭스에서 [장진호 전투]를 봤다.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대해 알아보면서, 장진호 전투 때 미네소타 출신의 군인 4000여명이 사망했다는 글을 봤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더 알고 싶어서 보게 되었다.
한국전 당시 맥아더 장군이 한국의 혹한기를 버틸만한 병사들을 많이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북쪽에 위치해 겨울이 길고 추운 편이었던 미네소타주에서 많은 병사들이 차출되었다고 한다.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 후, 병사들 모두가 이제 곧 전쟁이 끝날 것이며,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였다. 중공군 개입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맥아더는 마땅한 무기도 없는 중공군 자체가 위협이 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맥아더는 북한으로 진군을 명령했고, 북한에 닿은 군대들은 장진호 근처 하갈우리와 유담리에 진을 쳤다. 하지만 11월 27일, 나팔, 호루라기, 쨍그랑 소리와 함께 중공군이 해일처럼 밀려오며 기습 공격을 한다.
그 수 많은 중공군이 계속 밀려들어오고, 또 밀려들어 오고... 첫 번째 무리들이 총을 들고 달려오면 그 두 번째는 무기 없이 오는데, 앞에 쓰러진 이들의 무기를 집어들며 달려온다. 또 그 뒤에는 자동 권총을 든 이들... 그렇게 중공군의 대공세는 며칠동안 계속 되었고, 결국 후퇴를 한다. 그리고 고립.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려보지만 소식이 없고, 그들은 그들 자신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전투로 사망한 이들도 많았지만, 동사하는 이들도 늘어간다. 사방에서 달려오는 적도 적이지만, 영하 40도의 추위는 더 가혹했을 것이라 상상된다.
한국전 종군기자 David Duncan 사진
이런 사정은 중공군도 다르지 않았다. 중공군이 스스로 포로가 되기를 자처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똑같이 지쳐있었고, 굶주려 있었다. 방한복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몸이 말그대로 얼어 붙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생존자 중 한 분이 그때 상황에 대해 증언하며 말하길, “당시 참전했던 중공군을 다시 만난다면 형제처럼 안아주고 싶어요. 저처럼 고통받았으니까요.”
한국전 종군기자 David Duncan 사진
장진호부터 흥남까지 적 그리고 추위와의 전투를 벌이며 철수를 이어갔고, 중공군의 첫 공격 이후 2주만인 12월 11일. 흥남에 도착하며 철수 작전이 막을 내린다. 이 전투는 역사적으로 실패한 전투로 남았지만 동시에 성공적인 후퇴 작전이기도 했다.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되는 것이다. 만약 (장진호 전투가 아닌 다른) 성공한 전투작전이었다 하더라도, ‘적은’, ‘미미한’ 사상자를 낸 정도로 성공적이게 끝냈다.- 라는 말 자체도 너무 잔인했다. ‘적은’, ‘미미한’. 그 단위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절대 그 단어 안에 함축되지 않을 한 생명이었을텐데. 전쟁은 한 쪽이 이기면 한 쪽은 죽음 뿐인 게 당연하고, 절대적이다. 그래서 더욱 슬프고 끔찍한 것이다.
누군가를 죽이는 게임이나 혹은 죽고 죽이는 것이 마치 장난감 하나 쓰러뜨리듯 가볍게 여겨지는 영화를 못보겠는 것도, 절대 해서도 봐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게임은 그저 게임일 뿐.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잘 모르겠다.
보면서 문득, 당시 중공군과 북한군의 이야기도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 한국과 미국 혹은 다른 참전 국가의 얘기는 들어본적이라도 있는데, 중공군과 북한군에 대한 얘기는 접할 방법이 아예 없어보이니 안타깝다.
얼른 통일이 되어서 직접 두 발로 찾아가보는 수 밖에는 없나?
아, ‘통일’ 하니까 갑자기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한 번도 만나뵌 적 없는 할아버지. 엄마가 분명 할아버지가 날 만나면
예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을거라고 했다. 사진으로만 얼굴을 봤었는데 참 좋은 분이셨을 거란 생각이 첫 번째로 들었다. 할아버지는 전쟁통에 북에서 남으로 피난오셨다고 했다. 살아계셨더라면 당장 만나서 그때 얘기를 들어봤을텐데. 할머니도 그렇고.
할아버지는 화가셨다. 내가 할아버지 반만 닮았어도 지금 이러고 있지는 않는데... 엄마 말로는 그 피가 이모한테 다 가고 너한테는 조금 튄 것 같다(?) 라는데... 믿거나 말거나...!
여튼, 통일이 된다면 할아버지 고향에 가는 셈이다. 어디인지는 엄마가 잊어먹기 전에 여쭤봐야겠다.
'다큐 제작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DMZ 다큐멘터리 제작중] #9 뭘 더 해야해 (0) | 2018.11.14 |
---|---|
[DMZ 다큐멘터리 제작중] #8 역사공부를 해야하는 이유 (0) | 2018.11.10 |
[DMZ 다큐멘터리 제작] #6 미네소타 프로젝트와 서울 프로젝트. 받은 것을 돌려준다는 것. (0) | 2018.11.07 |
[DMZ 다큐멘터리 제작] #5 어차피 돌아서면 잊는데 (0) | 2018.11.06 |
[DMZ 다큐멘터리 제작]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0) | 2018.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