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큐 제작 일기

[DMZ 다큐멘터리 제작중] #12 고성 통일 전망대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터뷰 요청했던 이야기

by 정어리란다 2018. 11. 18.


고성 통일 전망대. DMZ 동부 지역 도보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이자, 다큐멘터리 첫 촬영지였다.

통일 전망대를 잘 찍어야한다는 생각에 나 혼자 서는 무리 일 것 같아 다른 친구들에게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아마추어니까 뭘 찍든 처음은 다 버리는 거라 보면 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처음부터 통일 전망대라니 이 도보여행에서 아니 다큐에서 핵심적으로 나오게 될 수도 있는, 분단에 있어 하나의 상징 같은 곳에서 첫 촬영이라니!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로 말아먹었다. 내가 찍은 것 중에 쓸 만한 건 거의 없고, 그나마 부탁한 영상들이 더 정성스럽게 잘 기록되어 있어서 그걸로 겨우 쓸까 말까. 아니면 다시 갔다 오던가 해야 될 판이다.



변명을 하자면 시작부터 멘 탈이 갈려 있었다. 이렇게 해야 되나, 아님 저렇게 해야 되나? 우왕좌왕하고 마음이 조급해져서 뭔가 하나를 끝까지 찍었다가 보다는 썰려있다. 말 그대로 썰려 있다. 흐름이 뚝뚝 끊겨있는 게 영상에서 느껴진다.

게다가 머릿속에는 온통 인터뷰를 하는가, 마는가. 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 저기 외국인 관광객 있는데 인터뷰 따볼까...? 아 아니다 굳이 필요하진 않을 거야. 그냥 시도라도 해봐? 뭐라고 물어보지? Could you로 시작해야 예의 있어 보인다. 그랬나?’ 외국인 커플이었는데,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여자 분 혼자 계실 때 가서 인터뷰 요청을 했다. 일단, 내가 뭔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아니 그냥 기억하고 싶지 않다. 횡설 수설 이상한 말을 했다.

내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 까진 얘길 했고 그 다음 부터가 대 환장인데 나는 확실하게 South Korean 이고... ... (나 지금 무슨 말 하니) ... I’m sorry, sorry. 하하. 됐고, 그래서 그런데 인터뷰 해줄 수 있니? 너희 생각이 궁금해.” 그 외국인 관광객 분은 혹시 녹화하는 거야? 그냥 얘기 하면 할 수 있는데, 녹화하면 못하겠어. 미안.”

단칼에 거절당했다. 그래... 옷차림도 추레하고 영어로 횡설수설 이상한 말만 하고 그럴 수 있지... 부담스러울 수 있지... 하고 애써 위로를 해봤지만 처음 시도해본 인터뷰 요청에 이렇게 거절을 당하다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금방 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도 거절에 약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하는 거절은 잘 하는데, 거절을 받는 것은 참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너무 긴장한 탓에 내 영어 실력이 발휘되지 못한 데에 대한 부끄러움도 엄청났다.


(나는 애꿎은 불상과 마리아상만 찍어댔다. 간절한 순간이었어서 그랬나.)


인터뷰 요청에 응해줄 만한 선한 인상의 다른 한국 관광객들을 눈으로 훑었지만, 앞에서의 충격 때문에 시도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어슬렁거리며 대충 보이는 거 찍고 했다. 제 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그러니 결과물은 안 봐도 뻔했다.

그냥 집에 가고 싶고, 자고 싶어졌다. 통일 전망대를 빠져 나오는 버스 안에서 눈을 붙였더니 좀 나아졌다.

어쨌든 필사적으로 인터뷰를 하나 따긴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국 그 날 고성의 어떤 마을 회관 옆 공터가 점심장소였는데, 그 마을회관에 계시던 분들을 인터뷰하기는 했다. 바닥을 기던 기분이 뿌듯함으로 날았다.


반응형